나는 정크푸드라고 욕먹는 햄버거입니다.
나름대로 좋은 혈통을 가진 한우 육질과, 미국 남부의 좋은 밀가루와, 지중해 연안 토마토로 만든 토마토페이스트와, 경남 의령에서 길러진 싱싱한 토마토와 양상추, 계란, 식용유, 식초, 소금이 적당히 혼합된 마요네즈로 만들어졌습니다.
설탕이 좀 과하고, 약간 오래된 식용유가 사용되었고, 어쩌다 보니 살짝 탄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맛은 좋아졌습니다. 맛 때문에 비계를 조금 넣은 것 빼고 보면 나쁠 만한 것도 없습니다.
날 손에 들고 있는 그 사람이 한입 크게 베어 물었습니다. 침이 참 많습니다. 흥건하게 젖어 식도로 돌입합니다. 침은 대부분 물이지만 구강에는 다양한 전해질과 효소, 다양한 펩타이드가 존재합니다. 침에 많이 들어있는 아밀라아제가 빵의 녹말을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양치를 자주 하지 않은 사람은 다양한 세균도 가지고 있습니다. 프리보텔라는 장 보다 입에서 더 많이 나쁜 짓을 하는데 치주를 갉아먹던 이 놈들이 음식과 섞여 위장으로 들어갑니다.
한입 한입마다 내 몸의 일부는 목구멍으로 넘어갑니다. 조금의 양념과 양상추 반 조각만 탈출하였을 뿐 체념하고 목구멍을 지나 위장으로도 넘어갑니다.
곧이어 따라온 콜라 때문에 우린 위장 바닥에 추락했습니다. 생각보다 넓은 위장에는 별 게 없었습니다. 씹지 않고 넘어온 우리는 아직 원형이 남아있었지만 위벽에서 나온 무언가 (염산) 이 고기 패티를 마구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위산은 위에서 분비되는 소화를 돕는 액체로 pH가 1.5~3.5 이며, 0.5%의 염산과 대량의 염화칼륨, 염화나트륨으로 되어있고 단백질 소화에 주된 역할을 합니다.
만신창이가 된 나는 형체 없이 죽처럼 으깨져 십이지장을 지나 소장으로 들어갑니다. 형체만 없던 햄버거는 소장에서 소화액을 만나 빵은 포도당으로, 고기는 아미노산으로, 지방은 지방산으로 완전히 해리되었습니다.
그나마 양상추에 조금 남았던 섬유질은 소장을 같이 지나는 길동무가 됩니다. 아직은 박테리아 친구들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장에 가면 아주 많을 거라던 박테리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나온 길 중간중간에 마주친 산성용액들 때문에 박테리아는 살기가 어려웠고 모두 대장으로 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어느 샌가 박테리아들이 나타나고, 힘을 잃은 산성용액 자리에는 박테리아가 살만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일부 용감한 박테리아는 남은 담즙산을 먹고 2차담즙산을 만들어 대사활동에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갈수록 박테리아는 다양해지고 개체수가 많아지며, 대장 벽에 빽빽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장점막에 자리잡은 박테리아들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먹거리에 달려들어 미친 듯이 배를 채웁니다.
정제밀가루, 단백질, 트랜스지방을 좋아하는 박테로이데스 후라질리스와 기름기 좋아하는 루미노코커스는 신이 났습니다.
미역국을 즐겨먹던 프레베우스는 풀이 죽었고, 전분을 좋아하는 후라질리스와 고기를 좋아하는 불가투스는 맘껏 증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착하지 못한 두 녀석 덕분에 사람은 속이 좋지 못합니다.
맘씨 착한 프레베우스, 비피더스는 오늘은 굶게 되었지만 내일을 기대하며 장벽에 숨어있습니다. 그리고 근근히 살아있던 프리보텔라는 치주염 때문에 항생제를 먹은 이 사람 때문에 운명을 달리했고 그 자리에는 깡패 같은 푸조와 엔테로박터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맨날 이런 음식을 먹게 되면 이 동네 최고 깡패인 프로테오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이 녀석은 맨날 장벽을 탐하고 상처를 줍니다.
햄버거만 먹고 미안했는지 요거트를 한 병 들이켜봅니다.
음식과 함께 장 속을 지나던 유산균은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운 좋게 간신히 자리를 잡았던 락토바실러스도 힘이 듭니다.
수 많은 장내미생물들이 남은 햄버거 찌꺼기를 먹고 다시 뱉어냅니다. 주위에는 박테리아 시체도 즐비하고 그들의 배설물이 시큼한 냄새를 내고 있습니다. 위장에서 만난 지독한 염산과는 사뭇 다릅니다. 기세 좋던 나쁜 균들이 시큼한 냄새를 내는 SCFA(Short chain FAT ACID)에는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어느새… 나는 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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